내정 인물 대부분 통과…‘제 기능 못한다’ 비판인사 공정·투명성 위해 필요…“개선방안 찾아야”
민선 6기를 맞아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도입한 산하 기관장 ‘인사청문(간담)회’ 제도가 존폐 갈림길에 섰다.지방 공기업 기관장들의 공정하고 투명한 임명을 위해 도입된 이 제도를 놓고 최근 일각에서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체장이 내정한 인물 대부분이 시·도의회가 주관하는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면서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또 의회가 단체장의 뜻에 따라주는 거수기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인사의 공정·투명성을 확보하고, 의회가 단체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비록 불완전하더라도 유지하고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법적 근거 없는’ 인사청문회…‘너도나도’ 도입
전국적으로 경기도와 대전시, 인천시, 강원도, 광주시, 전남도, 서울시 등이 지방 공기업 등 산하 기관장 내정자의 도덕성과 행정 역량 등을 검증하기 위해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했다. 후보자 임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회 인사청문회와 달리 ‘인사간담회’ 형식을 빌렸다.
인사청문회는 시·도의회가 주관한다.
지방 공기업 사장 임용은 자치단체장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시·도지사는 의회의 인사청문 결과문 채택 여부에 구속을 받지 않는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의회의 선택을 그야말로 ‘받아들여도 그만, 무시해도 그만’인 불완전한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경기도의회는 2014년 9월부터 산하 기관장 인사청문회를 하고 있다.
경기도시공사·경기신용보증재단·경기문화재단·경기중소기업진흥센터·경기개발연구원·경기과학기술진흥원·경기일자리재단 등이 대상인데 도의회 의장은 인사청문 결과문을 도지사에게 전달하고, 도의회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결과문을 채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도지사가 인사청문 결과문을 따를 필요는 없다.
대전시도 2014년 8월 대전도시공사 사장을 시작으로 대전마케팅공사 사장, 대전시설관리공단 사장,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했다.
인천시의회도 민선 5기때인 2011년 10월 김진영 정무부시장 내정자를 대상으로 첫 인사청문회를 했다.
현재까지 총 5명의 정무부시장 후보를 대상으로 인사청문회를 했고, 5명 모두 며칠 지나지 않아 곧바로 부시장으로 취임했다.
광주시와 시의회, 전남도와 도의회는 지난해 1월 광주 8개, 전남 5개 기관의 장에 대해 임명 전 인사청문회를 하기로 협약했고, 서울시도 올해 3월 처음으로 서울시설관리공단을 대상으로 인사청문회를 개최했다. 조만간 서울메트로를 대상으로도 인사청문회를 한다.
강원도의회는 올해부터 18개 강원도 산하 출자·출연기관장 가운데 강원도립대학, 강원신용보증재단, 강원도산업경제진흥원 등 3개 기관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한다.
◇ ‘일부 걸러내긴 했지만’…거수기 전락한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일부 내정자가 걸러지는 성과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내정자는 ‘부적격’ 여론에도 자리를 꿰찼다. 의회는 내부적으로 부적격 판정을 했음에도 자치단체장과의 관계 등을 고려한 정무적 판단에 따라 면죄부를 주는 등 스스로 ‘거수기’ 역할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광주시의회와 전남도 의회가 공동으로 진행한 광주전남 연구원장 인사청문회는 지역사회 이슈로 떠오를 만큼 높은 관심을 끌었다.
결국 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촉발된 부적격 여론에 밀려 임명 직후 사임했다.
김대중컨벤션센터 사장과 광주복지재단 대표 내정자도 인사청문회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 낙마하기도 했다.
경기중소기업진흥센터 대표이사의 경우 2명의 후보자가 잇따라 청문회에서 낙마했다.
이들은 과거 ‘수도권 규제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밝혔거나 청문회 과정에서 불성실한 답변이 문제가 됐다.
지난해 3월 대전시의회는 대전시설관리공단 이사장 내정자에 대해 ‘부적격’ 의견을 담은 인사청문간담회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내정자 부인의 각종 부동산 투기 행위가 결국 발목을 잡았고, 권선택 시장은 이사장을 재공모했다.
반면 박남일 대전도시공사 사장은 인사청문회 당시 ‘부동산 불황 속 부동산 개발 업무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북괴의 스커드 미사일이 떨어져도 안전한 아파트를 짓겠다’는 엉뚱한 답을 내놓기도 했지만, 시의회는 ‘적격’이라는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했다.
지난해 9월에는 아들 취업 특혜 의혹, 전입신고 누락, 논문 공동 저자 허위 등재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된 차준일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 내정자에 대해 ‘적격’ 의견이 담긴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기도 했다. ‘진정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차 사장은 결국 올해 직원 부정 채용 비리로 구속기소되면서 사장 직을 내놓았다.
◇ “기관장 검증 불가피”…제도 개선방안 찾아야
‘검증 과정이 부실하다’거나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비판 여론이 나오는 등 인사청문회의 한계는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권선택 대전시장도 최근 민선 6기 주요 공약 중 하나였던 ‘주요 공기업 기관장 인사청문간담회’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면서 “청문회 결과를 냉철하게 평가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인사청문회 존폐 문제를 포함한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까지 했다.
의회는 인사청문 과정에서 업무 수행능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도 정작 보고서는 사장직을 수행하는데 적합하다는 의견을 내 인사청문회 무용론을 자초했다.
의회 나름대로는 후보자에게 결격사유가 있다 하더라도 임용을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고 인사간담회 경과보고서를 통해 의견만 전달하는 수준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법적·제도적 미비점과 한계로 예기치 않은 문제점과 부작용이 있지만 개선해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낙하산 인사가 해마다 반복되고 산하 기관장들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만큼 어쨋든 검증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김시성 강원도의회 의장(새누리·속초)은 “법률적 구속력은 없지만, 산하 기관장들의 전문성과 청렴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대상 확대 등 인사청문회 정착을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인식 대전시의회 의장은 “인사청문간담회의 근본적인 도입 취지는 시민과 동행하는 협치로 가기 위한 것”이라며 “민선 6기가 출범한 뒤 5차례의 인사청문간담회를 하면서 관련 법규상의 근거 규정이 없다 보니 기능적 실효성보다 상징성, 즉 요식행위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인사청문회 자체를 철회하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김 의장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라도 시와 협의를 통해 인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 나아가는 것이 시민이 원하는 길이라고 확신한다”며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개선방안을 찾기 위한 토론회 등을 통해 대책을 강구해 나갈 단계”라고 말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문창기 사무처장도 “인사청문간담회는 상위법 미비로 후보자 검증의 한계가 명확하지만, 자치단체장의 인사권을 의회가 검증하고 견제한다는 의미가 크다”며 “존폐를 논하기 이전에 법적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과 인사행정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려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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