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2011년 교과서 분석…여성 차별 내용도 여전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이들을 위한 격려 편지를 적어보자.”
한 출판사의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점자를 읽는 시각 장애인의 손’과 ‘계단 앞에서 움직일 수 없는 휠체어’ 사진과 함께 실린 글이다.
’소수자, 사회적 약자와 인간의 기본권 문제’를 고민해 보도록 한 내용이지만 정작 기술 내용은 장애를 개인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하거나 ‘격려편지’라는 불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 대책을 제시했다.
같은 교과서에 ‘배려적 사고’라는 주제로 마련된 단원에서는 끈으로 눈을 가리고 친구 찾아가기, 양팔을 하나로 묶고 수업하기, 코를 막고 식사하기 등 장애 체험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학습 대상이 고등학생임에도 사회적 관점이나 대책을 고민하는 과정 대신 재미나 장난에 그칠 우려가 있는 개인적 체험학습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1년도 초ㆍ중ㆍ고 교과서에 인권 가치에 맞지 않거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조장할 소지가 있는 내용이 다수 확인됐다고 22일 밝혔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남녀 역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임에도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남성 중심적ㆍ우월적 사고를 드러내는 사례는 여전히 많았다.
초등학교 실과 등 여러 과목 교과서 삽화에는 집안일이나 양육은 여성의 몫으로 그려졌고, 생활의 길잡이는 단원마다 위인의 업적이나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자긍심 - 스티븐 호킹, 꿈 - 히딩크, 책임 - 한준호 준위, 용기 - 처칠, 공정 - 맹사성’ 등 남성에 편중돼 있었다.
다른 고등학교 도덕 교과서는 자신의 세계화 지수를 측정해 보자며 ‘외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물건을 산 적이 있다’, ‘외국 상표를 다섯 가지 이상 알고 있다’, ‘외국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국제 전화를 걸어본 적이 있다’ 등의 항목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화 지수로 제시한 항목 10개 중 4개가 학생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닌 경제적 요소를 제시하고 있어 사회ㆍ경제적 차이에 따른 위화감과 차별을 조장할 수 있는 사례로 꼽혔다.
고등학교 체육 교과서에는 에이즈 예방의 기본 수칙으로 ‘정조’를 제시하고 ‘믿을 수 있는 한 사람과의 성 관계를 해야 안전하다’고 서술했다.
에이즈는 성행위 외에도 감염된 주삿바늘이나 피부 상처, 모체로부터의 감염 등 다양한 경로로 감염되는데도 ‘에이즈 감염자는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다.
인권위는 지난 5월 교사와 학생으로 구성된 교과서 모니터링단을 꾸리고 3개월 동안 교육기본법과 국제인권규약을 기준으로 초등학교 5~6학년 전과목 교과서와 중학교 도덕2, 고등학교 도덕ㆍ사회ㆍ체육ㆍ보건 등 48종을 모니터링했다.
인권위는 이번에 지적된 내용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수정ㆍ보완할 것을 권고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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