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재정적자로 당내 이념 지형 바뀌어
전통적으로 미국의 공화당은 민주당에 비해 군사적 분야에 있어 ‘개입주의’를 표방해왔다.이 때문에 ‘세계경찰’로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늘리는데 앞장서왔고 국방예산 삭감에는 반대 기조를 지켜오는 편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위기, 지난 11월 중간선거 결과 당내 이념적 역학의 변화 등으로 공화당내 “국방예산은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대상”이라는 전통적인 사고가 크게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최근 아프간 주둔 미군 철군 규모와 속도 결정 과정이나 미 연방정부 부채상한선 협상과정에서 표출되고 있는 공화당내 기류를 보면 두드러진다.
아프간 미군 철군 문제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우군인 민주당내 리버럴에서 “신속한 대규모 철군” 목소리가 나왔지만, 뜻밖에도 공화당내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요구가 제기됐다.
티파티 계열을 중심으로 한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 리버럴과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막대한 아프간전 군비는 재정적자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지금은 아프간이 아니라 미국을 살려야 할 때”라는 주장이었다.
점진적 철군을 주장한 공화당 대통령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전통적 공화당의 목소리와 사뭇 달랐다. 심지어 2012년 공화당 유력후보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신속한 철군쪽에 힘을 실었다.
재정적자, 경제위기로 인해 ‘군사개입주의’가 설 땅이 공화당내에서도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매케인과 입장을 같이 하는 공화당내 ‘매파’ 린제이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이를 두고 민주당 리버럴과 티파티 공화당간의 “신성하지 못한 동맹”이라고 표현했다고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전했다.
교착상태인 백악관과 민주당의 국가부채 상한 증액 협상에서 돌파구로 공화당내 국방예산 삭감안이 부상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6일 “공화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국방예산 삭감안을 포함한 재정적자 감축 패키지를 찾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공화당내에서 국방예산 삭감을 고려하는 목소리 나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피터 로스캠 원내부대표(일리노이)는 “의원총회에서 국방예산을 신성불가침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공화당 초선의원인 애덤 킨징어(일리노이) 의원은 “그 대상이 어디이든지 정부의 낭비와 비효율성을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 새로운 유형의 보수주의”라고 표현했다.
과거 공화당이 ‘성역’으로 간주했던 국방예산 분야도 낭비적 요소가 있다면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킨징어 의원은 “국방비는 공화당 힘의 축이자 국가력의 기둥이었다”며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원칙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공화당내 국방예산 삭감과 해외주둔 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매파’ 성향 의원이 영향력을 여전히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내 기류가 현저히 변하는 것은 뚜렷해 보인다.
WP는 “공화당의 구주류 매파들은 티파티 성향의 신주류 의원들이 펜타곤 텃밭을 지키는 것보다 예산을 절감하는데 보다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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