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체리/최광숙 논설위원

[길섶에서] 체리/최광숙 논설위원

입력 2013-08-15 00:00
수정 2013-08-15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어릴 적 바나나는 구경하기도 힘든 아주 귀한 과일이었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던 큰오빠가 고항집에 내려 올 때 사 들고온 야구 글러브 같던 바나나송이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린 마음에 매일 바나나를 즐겨 먹는다는 원숭이마저 부러웠던 시절이었다.

수입농산물이 마구 쏟아지면서 이제 체리, 망고처럼 그림책에서나 보던 과일도 마트에 가면 쉽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렇다 해도 이들 과일에 선뜻 손이 가는 것은 아니다. 싸지 않은 가격이 다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최근 남편과 헤어져 아이들을 홀로 어렵게 키우던,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한 30대 주부가 체리가 든 택배상자를 훔쳤다가 경찰에 잡혔다는 사연이 뉴스를 탔다.

아이들이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도록 한 번도 체리를 먹어 보지 못해 그 맛을 보여주고 싶어 그랬다니 가난이 죄이지 싶다. 배 곯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간 장발장이 떠오른다. 장발장과 달리 체리를 훔친 그는 검찰로부터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 안타까운 모정을 향한 법의 관용이 새삼 빛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3-08-15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사법고시'의 부활...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한 공식석상에서 로스쿨 제도와 관련해 ”법조인 양성 루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제가 아니고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법고시 부활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2017년도에 폐지된 사법고시의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1. 부활하는 것이 맞다.
2. 부활돼서는 안된다.
3.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편정도가 적당하다.
1 /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