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에 공들이는 서방 기업들
이란과 주요 6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의 핵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진 지난 14일 세계경제는 출렁이기 시작했다. 협상안이 순조롭게 이행돼 내년 초 이란에 대한 제재가 풀리면 세계경제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이는 소련 붕괴, 미국과 중국의 수교 이후 최대 규모의 경제 개방으로 평가된다.
이란은 인구 7800만명으로 세계 18위 경제 대국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000달러를 살짝 웃돌지만 제재 해제 직후 국민당 실질소득은 1만 6000달러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각각 세계 2위와 4위를 자랑하는 천연가스와 원유 매장량이 원동력이다.
핵협상 타결의 부수 효과는 항공, 기계, 소비재, 금융 등 전 업종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유엔과 미국 등의 제재 여파로 2010년 직후 이란 시장에서 철수한 서구 기업들은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기회의 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1362억 배럴 안팎으로 추정되는 원유 매장량이다. 이란은 제재의 영향으로 2011년 하루 산유량이 360만 배럴에서 280만 배럴로 감소했다. 원유 수출도 절반가량 줄어 하루 110만 배럴에 그치고 있다.
이란은 제재 해제 이후 6개월까지 하루 50만 배럴, 이후에는 100만 배럴 정도의 원유를 추가 생산할 예정이다. 생산 비용이 배럴당 10~15달러로 저렴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담합 구도는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도 제재 해제와 함께 50달러 밑으로 후퇴할 수 있다.
덕분에 정유와 가스 등 에너지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가장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방의 경제제재에 막혀 기능을 상실한 ‘유정’이 상당수인 데다 187곳의 유전 가운데 40%가량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석유 수출 확대를 위해 낙후된 정유 부문을 손봐야 하는데 여기에만 2000억 달러(약 231조원)가 필요하다. 투자가치도 높아 다국적 에너지 기업의 자금과 기술 투자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의 로열더치셸과 이탈리아 ENI 등은 이미 수도 테헤란을 찾아 고위 당국자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접촉에는 미국의 엑손모빌까지 이름을 올렸다.
중동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란의 자동차 시장을 겨냥한 힘겨루기도 벌써부터 감지된다. 이란은 매년 100만대 이상의 자동차가 팔리지만 60% 이상은 중국산 조립품이다. 1979년 이란 혁명 전까지 이란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는 미국산이었다. 수십년간 축적된 반미 감정이 변수로, 르노와 푸조 등 프랑스 자동차 업체들은 이 틈을 파고들어 현지 업체와 합작을 추진 중이다.
항공 산업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이란 교통부 장관은 “향후 10년간 400대 이상의 민간 항공기를 구입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200억 달러가 넘는 시장 규모에 보잉, 에어버스 등 항공기 업체들은 몸이 단 상태다. 블룸버그는 “이란 항공 산업이야말로 거대한 블루오션”이라고 평가했다.
외국 계좌에 묶였던 100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돌면서 가장 활기를 띨 곳은 소비재 분야다. 애플과 같은 세계적 정보통신기술 업체들은 이란 공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주식시장도 매력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외국인 지분이 1%에 불과한 이란 증시가 개방되면 수년 내에 외국인 비중이 30%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했다. 316개 기업이 상장된 이란 증시는 시가총액 1060억 달러, 하루 거래량 1억 달러를 웃돈다. 이 밖에 GE는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 등 헬스케어 제품 수출에, 시스코시스템스는 네트워킹 시스템 수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코카콜라는 현지 판매업자를 물색하고 있지만 생산 설비 등 직접 투자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내부에서도 수출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다. 천연자원 외에 ‘대박’ 수출이 가능한 효자 품목으로는 매년 5억 6000만 달러 이상 팔릴 카펫이 꼽힌다. 견과류 피스타치오도 주요 수출 품목이 될 전망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2015-07-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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